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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3 / 아버지의 마음으로 / 김치헌 목사 / 기독공보 기고

관리자
2019-12-13
조회수 351

2019년 12월 3일(화)

김치헌 목사 기독공보 기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필자는 실로암교육문화센터에서 시설장으로 섬기고 있다. 실로암교육문화센터는 노숙인의 복지 증진과 복음 선교를 위해 2009년 부천동광교회(류재상 담임목사)에서 설립한 남성 노숙인 자활시설이다.

처음 교회의 부름을 받고 노숙인 시설에서 사역하게 되었을 때, 많은 지인들이 격려해주었다. 소중한 일을 잘 해 달라고 당부도 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 도와줘 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데, 헛수고를 왜 합니까?"라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숙인 사역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아버지가 20년 전 4살짜리 아들을 잃어버렸다. 아들을 찾아 헤매기를 20년, 그 세월은 아픔이고 눈물뿐이었다. 아들을 잃어버림과 함께 삶도 잃어버렸다. 살아생전 단 한 번만이라도 아들을 다시 안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길 가에 한 노숙인이 앉아 있었다. '더럽고 쓸모없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낯이 익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20년 전 잃어버린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주저앉았다. 아들을 끌어안고 한 없이 울었다. 이제 그 노숙인은 더 이상 더럽고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소중한 아들이었다. 잃어버린 아들이 노숙인이 되었다고 침을 뱉고 지나갈 아버지는 없다. 노숙인을 돕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할 아버지도 없다. 남들은 노숙인이라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적어도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만큼은 소중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1998년 IMF 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노숙인을 돌보기 위해 일선에 나서준 곳이 한국교회이다. 전국의 노숙인 시설을 살펴보더라도 그 설립 주체는 대부분 한국교회다. 그리고 2019년 현재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노숙인 사역에 뛰어 들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그 힘든 일을 감당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실로암교육문화센터에서 사역하면서 노숙인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본다. 길거리에서 뒹굴며 하루 하루의 삶이 고통 그 자체였던 이들이 시설에 들어와서 씻고, 먹고, 자면서 회복하고, 일자리를 찾아 취직을 하고, 주거를 마련하여 지역사회에 복귀한다. 기적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만나고 삶이 아예 달라지는 노숙인들을 본다. 노숙인이었던 그들이 더 이상 노숙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가 되는 모습을 본다. 기적이다. 나는 오늘도 한국교회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노숙인 사역을 통해 일으키고 있는 기적을 보고 있다.

김치헌 목사/실로암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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