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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11 / 어찌 포기하랴 / 김치헌 목사 / 기독공보 기고

관리자
2020-02-11
조회수 423

2020년 2월 11일(화)

김치헌 목사 기독공보 기고


노숙인은 버려진 사람들이다. 가족이 버리고, 사회가 외면하고, 정부에서도 지원하기를 꺼려하는 대상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은 하지 않고, 끼리끼리 어울려 술 마시고, 싸움질하고, 길거리에 뒹구는 사람들에게 무슨 기대를 가질 수 있겠는가? 노숙인복지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필자마저도 가끔은 그들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김○○ 씨는 알콜 의존이다. 실로암교육문화센터에는 2014년부터 입퇴소를 반복해오고 있다. 그의 생활을 보면 기대와 포기가 반복된다. 입소하면 한두 달 열심히 근로활동을 한다. 돈도 제법 모은다. 자립할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하지만, 금세 술 병이 도진다. 만취되어 복귀하면 직원들에게 욕설과 폭언은 예사고, 다른 입소자들에게 협박과 주먹질을 하며 난장을 친다. 결국 센터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간다.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마냥 뒹군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포기하고 싶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해외근로자였다. 몇 년씩 해외에서 생활했다. 그 사이에 엄마는 다른 남자를 만나서 집을 나가버렸다. 그의 나이 4살 때였다. 밑으로는 2살 여동생이 있었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자기 손으로 동생을 돌보며 살아야 했다. 밥을 해서 먹이고, 옷을 얻어다 입히고, 학교생활을 돌봤다. 밤이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칭얼대는 동생을 달래며 재우고 혼자 몰래 울었다. 18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기잡이배를 탔다. 고된 일을 하며 동생을 전문대학까지 가르치고 결혼도 시켰다. 모아두었던 수 천 만원의 돈도 동생에게 맡겼다. 필요할 때 사용하다가 돌려달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어느날 동생이 사라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홍콩으로 이민 가버린 것이다. 그가 슬펐던 것은 돈을 잃어서가 아니라 삶의 전부였던 동생이 떠난 것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배에서 그물을 걷던 중 롤러에 몸이 말려들어갔다. 한쪽 팔이 으스러지고 머리가 함몰되었다. 비슷한 사고를 3번이나 당했다. 그 때부터 무너졌다. 상처로 가득한 삶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상흔을 보고서도 외면할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버리셨을까? 아니다. 사람은 그들을 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눈길은 그들의 아픔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믿는바 인생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은 시작하고, 하나님이 시작하는 자리에서 비극이 끝나지 않던가. 하나님은 세상에서 삶과 집을 잃어버린 노숙인을 영원한 삶과 천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 일을 계속한다. 실로암 직원들은 주말도 없고, 일주일에 8~9일 근무하고, 노숙인을 찾아 무더위와 추위 속에 거리를 헤매고, 거친 사람들의 욕설과 폭언을 들으며 심지어 폭행을 당할지라도 계속 한다. 필자도 주기적으로 코피를 쏟는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세히 보면 그 영혼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사역자가 어찌 포기하랴.

김치헌 목사/실로암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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